소녀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초록색 융단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. 풀의 후끈한 열기도 기분 좋다. 만날 수 있으니까. 이곳에는 두 사람밖에 없으니까. 그렇다. 도자기 인형 같은 소녀, 빅토리카는 오늘도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. 소년, 쿠조 카즈야가 달려오는 것을. 움튼 초록색 새싹들. 분수에서 흘러넘치는 파란 물. 그리고 그것들을 비추는 빨간 태양. 그 모든 색채가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생명이 빛에 감싸여 살아가려 하는 계절, 여름. 이윽고 찾아올 붕괴와 이별을 앞에 둔 한순간의 평화─찰나.